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가면 그렇게 많은 것들이 바뀐다던데 입맛도 진짜로 많이 변했다. 어릴 땐 초록색 음식이면 다 싫었는데 이제 초록색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되서 그런지는 몰라도 초록색 음식을 찾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브로콜리, 케일, 시금치, 오이, 양상추, 깻잎… 초록은 사람의 마음에 편안함을 준다던데 어쩌면 초록색 음식도 우리의 몸에 편안함을 주는 친구들이 아닐까?
어쩌다 스무디를 갈아먹게 되었냐고 질문을 종종 받았는데 사실 뚜렷하게 언제부터 무슨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라서 가물가물하다. 다만 자취를 시작하게되면서 무기력해지는 일상이 잦아졌고 그럴수록 계속 빈약해지는 상차림에 고민이 깊었다. 그래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배달음식과 패스트푸드를 줄이고 귀찮더라도 집에서 해먹는 습관 들이기, 밖에서 사먹기보다는 건강하게 내가 싼 도시락 먹기, 햇반이나 햄과같은 가공식품 대신 엄마가 싸주는 반찬이나 반찬가게에서 먹기.
근데 그렇게 식습관을 바꿔도 뭔가 묘하게 부족하고 아쉽고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공허함의 이유는 바로 야채였던 것이다. 자취생이 사는 집은 고급 오피스텔이나 아파트가 아니고서야 대부분 옵션으로 딸려있는 소형 냉장고가 들어가있는데, 조금이라도 크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좁아 터져서 뭘 넣지도 못하는 크기가 대부분이다. 크기만 문제일까? 상태나 기능이 좋은 편은 아니라 야채가 조금만 지나도 금방 상해버린다. 그렇다고 세척야채나 소분되어있는 야채를 사기에는 너무 비싼게 자취생의 현실이었다. 그 돈으로는 라면을 사면 몇끼나 더 먹을 수 있는데다 냉장고 자리차지도 안하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야채 없이 살 순 없었다. 이미 깨달아버린 이상 어떻게라도 야채랑 다시 친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쌈채소라도 사서 닭가슴살에 쌈을 싸먹었고, 생양파라도 반찬으로 쌈장에 찍어먹었다. 그러다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스무디를 만났다. 케일스무디!
어쩌면 내가 초록을 좋아해서 그 썸네일이 눈에 띄였는지는 몰라도 어쩌면 야채를 먹게 해준 기회였으니 놓치고 싶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예전 같았으면 진한 녹즙색 컬러를 보고는 으… 하고 우엑,,, 거렸을텐데 이제는 그런 말이 목구멍으로 나오진 않는걸 보아하니 내 몸이 원하는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무기력한 삶을 박차고 나와 오랜만에 당근거래로 믹서기를 하나 구했다. 퇴근하고 나를 위해 외출하고, 타인을 만나게 되게 오랜만이었던 순간이었다.
그 믹서기를 산 값과 나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싫어서 그 다음날부터 새벽 일찍 일어나 열심히 주스를 갈아먹었다. 케일 3장… 샐러리가 얼마였더라? 휴대폰 화면과 재료를 번갈아 오가며 서툴지만 나를 위해서 애를 썼다. 나를 위해서 빨리 일어나고, 애를 쓰고, 건강한 것을 마시는 행위. 고작 주스 한잔 갈아먹는것이지만 그 주스의 영양소와 함께 담긴 사랑과 긍정적인 요소는 그 무엇보다 나의 일상에 든든한 양분이 되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