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경주 석굴암에 다녀왔다. 어릴 때는 압도적인 사찰 분위기와 커다란 불상이 무섭기만 했는데 이제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보호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종교가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부처님 또한 모든 것을 해결해주려는 분이 아니다. 다만 종교로부터 얻는 평온함과 위로는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형태로 다가온다. 석가모니 인생수업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분명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말인데 석가모니 말씀과 더불어 설명을 들으니 좀 더 와닿았다.
없을 무, 항상 상. = 영원한 것은 없다는 불교 진리 중 하나다. 때로는 이 진리가 내게 공포로 다가오기도 하고 안도감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양날의검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공포도 안도감도 결국 다 영원하지 않는 한낱 연기와 같은 것들 뿐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무상의 진리를 조금 받아들인걸까?
죽음이 두려운 날이 많다. 매일 죽고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도 나의 육신을 떠나 혼이 되어 49일을 떠돌다 심판을 받으러가는 순간이 온다면 나도 모르게 겁이 난다. 불교를 믿으면서도 정말 죽으면 혼이 따로 있을지, 환생이라는것이 있을지 의심하는 태도가 다른 불교신도들에겐 손가락 질 받을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산 자중에는 아무도 온전히 죽음을 알 수 없으니 이정도 의심은 할 수 있는건 아니냐며 스스로를 합리화 하곤한다.
영원한 것은 없는 걸 알면서도 내가 죽음에 집착하는 이유는 지금 살아가며 만난 인연들이 너무 좋아서 그렇다. 다시 태어난다고해도 이번 생에 만났던 인연들을 또 환생하여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만나더라도 기억도 못한채 다른 모습을 하고 만날 우리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슬퍼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유를 더듬거리며 찾게되면 결국 마지막엔 무상에 다다른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렇기에 지금이 소중할 수 있는 것이고 지금의 인연을 사랑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소중히 여기다 사랑하다 또 문득 공포감이 생기고 무상을 깨닫고 다시 사랑하고를 반복한다. 이는 어쩌면 윤회의 삶을 닮았기도 했다. 돌고 도는 감정처럼 우리의 삶과 혼은 돌고 돈다. 그러니 오늘도 무섭지만 애써 불교의 진리를 떠올리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다. 매일 매일 연습해도 무뎌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눈감는 날에는 슬픔보다 안도감이 가득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