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감상은 블로그에 기재했으므로, 여기서는 오로지 마사코의 버섯과 캐리어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과 주관적인 의견만 남깁니다!
마사코는 오랜 시간동안 일본에서 부모님의 병간호를 하며 살아왔다. 영화 후반부에 저주 인형 이야기가 잠깐 나오는데 (짚으로 된 인형에다 못질을 하는 그 저주 인형)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며 해봤냐는 식으로 묻는 사치에와 미도리의 말에 표정을 굳히는 블랙 코미디 장면이 있다. 그 대상은 정확하진 않아도 아마 그녀의 삶을 지치게 만든 병든 부모였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진 채 모시던 부모님이 세상을 소천하고 나서야 마사코는 삶의 자유를 얻었다. 그러고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른 채 살아오다가 우연히 핀란드에서 개최대는 에어기타대회 (소리 없이 기타를 연주하는 척하는 엉뚱한 대회)를 보고 무작정 짐을 챙겨 핀란드로 오게된다.
하지만 핀란드에서 지낼 그녀의 짐이 모두 담긴 캐리어는 항공사의 실수로 인해 분실된다. 멍하니 수하물을 찾는 곳에서 사람이 다 빠져나간 뒤 공허하게 서있는 마사코의 뒷모습이 바로 첫 등장 장면이다.
보통 오랜시간 해외를 머물기로 한 짐이 사라지면 발을 동동구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사코는 당황하지도 슬퍼하지도 화조차도 내지 않는다. 그저 갈매기가 울어대는 항구에 가만히 서서 며칠동안 항공사에 전화할 뿐이다. “제 짐을 찾으셨나요?” 하지만 아무 해답을 찾지 못한 채 항상 전화는 끝이 난다. 그리고 마사코는 말했다. 그 짐에 솔직히 무엇이 들었는지 기억도 잘 안난다고.
여기서 나는 마사코의 캐리어가 그녀의 [삶의 의미]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짐은 일본에서 가져온 물건이며 그 의미는 [일본에서 지냈던 시간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마사코는 애초부터 캐리어가 사라져도 큰 타격감이 없었던 것이다. 도망치듯 떠나온 핀란드까지 가져온 그 짐은 어떻게 지나간지도 모른 시간만이 담겨있었다.
(여기서 추가적으로 덧붙이자면 [캐리어=짐=마음에 가지고 있던 짐]으로도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했다.)